강냉이는 시를 좋아합니다. 특히 돌아가신 강냉이의 할아버님의 모습과 함께 자리 잡은 고향 대성동의 기억을 자꾸만 떠오르게 하는 시들이 몇 개 있어 항상 간직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은 슬프고 어떤 것은 아련하고, 어떤 것은 따뜻한 희망을 주지만, 그 중에서도 정 희성 시인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 는 할아버님이 어쩌다 한 번 털어놓곤 하셨던 슬픈 이야기들을 그려주는 듯 합니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일이 끝나 저물어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많이 알려진 시입니다. 강냉이는 처음 접한 이후로 줄곧 이 시에서 그분을 보았습니다. 아주 어릴 때 언제나처럼 할머님 할아버님 방에서 함께 잠들기 전이었는데, 그때 할아버님께 듣게 된 이야기를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40리 흙길을 매일같이 걸어서도 학교를 갔노라고, 어떻게든 공부 열심히 배워 법과 공부가 하고 싶으셨다고, 그래봐야 지금엔 땅파먹고 사는 ‘땅꾼’ 인생 되었다고. 일 중 힘들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 중에서도 농사란 참 고되고 힘든 것인 듯 합니다. 참 이른 새벽부터 언제나 부지런히 일하시는 가족 어른들을 보고 자랐기에 가슴에 사무치게 감사하고, 그러면서도 언제나 함께 아픕니다. 평생을 농사만 하루같이 지어오셨기에, 벗어나지 못했다 여겼고 속상했다는 말씀이셨냐고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강냉이는 언제나 대성동을 찾으면 할아버님이 쉬고 계시고 아버지의 일터가 내려다보이는 그 곳에 조용히 혼자 가 있곤 했는데, 그나마도 벌써 찾지 못 한 것이 벌써 2 년이 되어 갑니다. 일단은 이렇게 이야기로 대신하고, 뜻한 바 이루어 곧 돌아갈 날이 어서 오길 바래 봅니다.
Among my favourite Korean poems, <jeo-mun gang-e sab-eul ssit-go> by Jeong Hui-Seong poignantly reminds me of my grandpa, who spent his whole life in the DMZ despite his ardent dream of leaving to make another life outside of the small village. He was hell of a storyteller, who used to simply but honestly deliver his genuine feelings to my dad and, to me. In his stories were a young boy who had gone through the Korean war, a farmer in the DMZ as a responsible head of a household, and an old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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