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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에서 보내는 편지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과 북으로 각각 2km 떨어진,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설정된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 DMZ). 그 누구의 출입도 철저하게 금지되고 아직도 6.25 전쟁의 찬 냉기가 서려 있는 그곳에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이 있습니다. 강냉이가 태어나 자란 ‘대성동 자유의 마을’입니다.

대성동은 본래 농사를 짓는 강릉 김씨들의 작은 집성촌이었으나 한국전쟁이 잠정적으로 중단되며 이와 동시에 휴전협정에 의해 설정된 ‘비무장지대’의 한 가운데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운명적 시기의 대성동에서 제 증조부모와 조부모는 농사를 지으며 세월을 견뎠지만, 그 중 세 분은 이미 비무장지대 안에 갇혀 오도가도 못 하게 된 신세를 끝내 벗어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야 했습니다. 역시 그 안에서 태어나 상경과 귀향이란 고된 젊은 시절을 거쳐, 다시 그 안에 자리잡은 아버지가 현재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강냉이는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대한민국의 비무장지대 내(內) 거주인 4세대입니다.

대성동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모두 비무장지대 안에서 보내긴 했지만, 학업을 계기로 부모님과 떨어져 그 밖에서 지냈던 것이 짧은 인생에서도 벌써 반절이 훌쩍 넘는 기간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그 동안에도 대성동은 계속해서 외부로부터 철저하게 차단되어 왔기에, 이루 말할 수 없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으로 둘러싸인, 그 어느 곳보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저의 고향 마을이 돼 주었습니다. 바쁘고 화려한 도시에서 사는 날들이 길어질수록 대성동을 향한 향수는 점점 더 짙어질 뿐입니다.

이 같은 가족사와 성장배경은 강냉이로 하여금 고향과 가족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전쟁 직후 모든 민간인이 소거된 비무장지대 안에서 자급자족하며 원시시대에 가까운 생활을 했던 조부모 세대가 안타깝고, 혹시 모를 군사적 충돌의 위협에 겁먹으면서 소유권도 인정되지 않는 비무장지대 안의 땅을 터전으로 농사만 짓고 살아가야 하는 마을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불안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결혼과 동시에 대성동의 주민권을 잃게 될 저는, 고향에도 쉽게 찾아가지 못하는 신세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모른척 대성동 밖에서 다른 삶을 살아가기엔 그 곳에 담긴 이야기가, 제 뿌리가, 유년시절을 아름답게 물들여준 그곳의 빼어난 자연들이 발목을 잡습니다. 그래서 이 기가 막힌 마을과 사람들의 인생살이를 전하려고, 또 여전히 빼어난 모습을 간직한 그곳의 자연을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켜 나가기 위해 ‘강냉이네’를 짓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대성동 이야기와 강냉이의 바깥 세상으로의 모험들을 차곡차곡 쌓아 보려 합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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